출장을 다녀요/2022년

Fort Necessity National Battlefield

Dr. Kim 2022. 12. 14. 13:25

출장지였던 피츠버그에서 가볼 수 있는 또 다른 역사지 중의 하나로 Fort Necessity 가 있다.

1754년 있었던 French & Indian 전쟁과 관련된 곳 중 하나이다.

북아메리카 (지금의 미국, 캐나다 지역)은 프랑스와 영국의 경쟁지였다.

1750년에 들어서면서 이 두 국가의 경쟁이 심화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서로 충돌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오하이오 지역을 뉴프랑스 (캐나다)와 루이지애나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 프랑스군은 온타리오 호수의 나이나가라 요새에서부터 남, 서쪽으로 진입하여 영국인들을 몰아내고 자기의 영토로 주장했다.

그렇게 진군하면서 요새들을 건설했고 이를 알게된 영국은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휘하의 원정대를 보내게 된다.

일종의 특사를 보낸 셈인데 1753 - 54년 겨울에 프랑스군을 찾았지만 그들은 영국의 요청을 거부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오하이오 분기점에 요새 건설을 위한 군대를 파견했으나 프랑스군에 밀린다.

이후 워싱턴이 이끄는 연대가 이를 지원하기 위해 피츠버그 남쪽의 브라운스 빌 지역으로 진군하였고 원래 목적보다 좀 더 밀고 나가 대기한다.

캠프를 꾸리기에 좋은 지역을 골라 주둔하던 중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프랑스군과 맞서게 되는데 부족한 병력으로 직접 부딪히기엔 무리였다.

그래서 워싱턴은 비교적 영국에 우호적이었던 세나카 족과 연합하여 프랑스군을 포위한다.

역사로 보면 이때 한발의 총이 발사되고 그 즉시 15분 가량의 교전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프랑스군 13명 전사, 21명을 포로로 잡게되고 (한명은 탈출하여 프랑스 요새로 돌아감), 워싱턴 부대는 1명 전사, 2-3명 부상의 전과를 올린다.

이 교전을 두고 프랑스측은 영국군이 이유없이 공격하였다고 주장하고 워싱턴측은 이전과 같은 특사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워싱턴은 대규모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주둔하던 지역의 보강을 시작한다.

이 지역이 지금의 Fort Necessity 이고 원형의 방어벽을 구축한다.

지원군 293명이 충원되었고 다시한번 정규 영국군으로 구성된 100명이 더 충원된다.

이 병력들이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를 여는데에 일조하고 있었으나 대규모의 프랑스군과 인디언 연합군이 진군한다는 보고를 받고 다시 Fort Necessity로 불러들인다.

7월 3일 프랑스군 600명과 인디언 지원군 100명이 이 요새로 접근하여 산발적인 전투가 지속되는데 영국군의 피해가 더 크게 나온다.

약 400명의 영국군와 700여명의 프랑스/인디언 연합군의 전투에서 워싱턴이 패배한 것이다.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워싱턴의 항복을 요청하게 되고 워싱턴은 항복문서에 사인한다.

Fort Necessity가 프랑스군에 넘어갔다.

결과적은 For Necessity에서 이루어진 영국과 프랑스의 대치는 영국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마무리 되지만 패했던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에서 대륙군을 지원하여 승리함으로 영국에 일종의 복수를 하게된다).

이런 긴 역사의 한 장소를 찾았다.

숙소에서 68마일, 한시간 반정도의 거리로 가깝지 않지만 비행시간까지 여유가 있었기에 오전의 일정으로 운전을 했다.

 

역사지 입구..

편도 1차선 도로변에 있어서 자칫 놓치기 쉽다.

안내센터 안에 있는 요새에서의 전투상황 디오라마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원형 요새에서 치열하게 맞붙어 싸우는 현장이었을 것이다.

요새는 복원되었고 그 현장으로 가는 길이다.

안내 센터에서 5분정도 걸어가면 요새를 만나게 된다.

전략적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언덕위도 아니고 뻥 뚤린 개활지 중심에 덩그러니 요새를 지어놨네...

포위되면 나갈 곳도 없고 같은 위치에서 적은 병력으로 방어하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공격하는 자의 위치가 더 유리하게 보인다.

군사학적인 생각은 아니고 그냥 요새를 봤을 때 드는 생각이었다.

2배의 병력 열세로 워싱턴의 영국군은 방어에 실패하고 항복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 요새와 연결되어 있는 또 하나의 역사지는 1830년대에 지어진 Tavern 이다.

National Road 라고 불리우는 국도변에 위치한 지금의 Inn 같은 곳으로 음식, 숙박을 할 수 있었다.

National Road는 연방 자금으로 건설된 최초의 도로였다.

1806년 제퍼슨 행정부 시절 승인되어 1811년 메릴랜드 주에서 시작된다.

메릴랜드,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변에 이런 Tavern들이 위치한다.

보통 1층은 식사, 2층은 숙소로 지금의 호텔같은 구성을 하고 있는데 이후 자동차, 철도 등의 발전으로 문을 닫는다.

이 Mt. Washington Tavern은 1856년 개인 주택으로 매각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이 있는 이 도로가 예전의 National Road 이다.

1층의 식당과 2층의 숙소

역마차들이 나오는 영화에서나 볼 듯한 장소이다.

흔히 접할 수 없는 장소여서인지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리 밝지는 않은 곳이다.

2박 3일의 짧은 출장길에 잠시 방문한 지역들이다.

업무를 마치고 시간을 내어 근처의 역사지나 볼거리들을 찾아다니는데 이번엔 두군데의 역사, 유적지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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