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2022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

맴피스, 내쉬빌_테네시

Dr. Kim 2022. 7. 11. 06:58

리틀락에서 하루를 쉬고 휴가 이틀째 테네시로 들어간다.

알칸사에서 미시시피 강을 건너면 테네시 맴피스라는 도시를 만나게 된다.

인구수 63만명인 맴피스는 치카소족이 오랫동안 미시시피 강을 끼고 문화를 형성했고 외부와의 접촉은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었다.

이후 오랜기간 스페인의 정착지였고 1819년 고대 이집트 수도 이름을 따서 맴피스라는 도시가 되었다.

이 곳은 앨비스 프레슬리와 마틴 루터 킹 목사로 알려진 곳인데 모두 맴피스에서 사망했다.

테네시 맴피스에 있는 welcome center에서 볼 수 있는 앨비스와 BB King의 동상

BB King은 블루스 음악의 거물이고 앨비스는 락의 제왕이라는 인물들이다.

내가 관심있는건 마틴 루터 킹에 관련된 역사이다.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데 (모든 사람들의 인권은 다 중요하지만 그 당시 미국의 사회적 흐름은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의 인권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그의 마지막이 이곳 맴피스였다.

 

조지아 애틀란타 출신인 그는 아버지도 역시 목사였다.

1929년 당시의 흑인, 더군다나 남부 지역에서 살았지만 나름 살만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침례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 활동도 했으나 학교를 다니면서 받았던 차별들이 계기가 되어 흑인 인권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964년엔 노벨 평화상도 받는 등 백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했고 그것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려고 했다.
그런 그가 1968년 4월 맴피스에 방문했다 머물던 모텔의 발코니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그 장소는 박물관이 되어 자리를 지키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도시의 분위기는 루이지애나와 비슷했다.

로레인 모텔의 306호가 그가 머물던 숙소였고 저격을 당했던 발코니에는 화환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텔은 인권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인권 운동의 상징이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던 그였기에 미국 전역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들이 많다.

다야한 인종, 문화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국이지만 백인 중심의 사회 구조와 유색인종들이 받는 부당함 들을 생각하면 그의 인권 운동이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짧은 방문을 마치고 켄터키로 이동하는 중에 거친 내쉬빌

내쉬빌은 테네시의 주도이면서 69만명정도가 거주한다.

역사적으로는 1689년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Cumberland 강 근처에 교역소를 세웠고, 1747년 프랑스 상인 그룹들이 정착지를 세웠던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정착촌들은 1740년대에 대부분 버려졌다고 한다.

이후 1779년 일부 탐험가들이 이 일대에 요새를 세웠는데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인 Francis Nash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이 지어졌다.

1806년 도시로 통합되고 1843년 테네시의 주도가 된다.

내쉬빌에는 미국 철도왕인 밴더빌트가 세운 대학과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센테니얼 공원에 있는 이 신전은 아테네에 있는 것을 실물 크기로 복제한 것이다.

테네시 100주년 박람회 기념으로 1897년 건축되었다.

내쉬빌의 별명이 남부의 아테네 라는데 이게 모티브가 되어 세웠단다.

아테네의 것을 보지는 않았지만 웅장하다.

역사적인 부분에서 유럽의 그것에 비하면 엄청 짧기에 작은 것 하나도 역사화하는 것을 잘하는 미국이다.

 

공원 한쪽에서 보이는 건물이 밴더빌트 대학

잠시 들렀다 가는 것이기에 파르테논 정도만 보고 오늘의 목적지 캔터키로 넘어간다.